전문가 칼럼

동남아 연안의 해적들은 어디로 갔을까? 소지역협력의 유용성을 보여주는 해양 동남아 국가들의 해적 소탕 작전

등록일 2022.12.28

 

박민정(숙명여자대학교 글로벌서비스학부)

 

 

최근 보도되는 동남아시아 해양 안보 관련 뉴스의 대부분은 남중국해 소식이다. 중국이 2012년 남중국해의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스카버러 암초를 강제 점거하면서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기각했지만, 중국의 도발 행위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이 대만,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중국과 분쟁을 겪고 있는 국가들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을 견제하면서 발생하는 각종 분쟁 관련 소식들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동남아시아 해양 안보를 오랜기간 위협해 온 이슈는 따로있다. 바로 해적이다. 해적이라 하면 서아프리카 기니만이나 소말리아 해역의 해적을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말라카 해협이나 술루-술라웨시 해역도 중세 이후부터 최근까지 해적들이 악명을 떨쳐온 지역으로 유명하다.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사이에 위치한 말라카 해협은 유럽과 동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통상 교통로로서 해적에 대한 기록은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에 들어 아시아의 교역량이 급증하며 대형 유조선 등을 노리는 해적들의 활동이 점차 활발해진 결과, 2000년대 초에는 말라카 해협이 해적행위 발생지역 세계 2위를 기록하고, 런던 보험시장에서 전쟁 위험 지역 목록에 추가되기도 하였다.

 

필리핀 남서부와 인도네시아 북동부, 말레이시아 사이의 술루-술라웨시 해역도 16세기부터 해적이 꾸준히 출몰해 온 지역이다. 1980년대 말부터는 필리핀 민다나오섬 서쪽과 술루 해역에 이슬람 무장반군 아브 사야프 그룹(Abu Sayyaf Group, ASG)이 자리를 잡으며, 통항선박에 대한 해적 행위가 보다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2000년 초에는 활동자금 마련을 위해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에서 몸값을 요구하는 납치 사건을 일으켰고, 2004년 2월 마닐라만 해상에서 페리 선박을 폭파시켜 해상테러로서는 역사상 가장 많은 116명이 사망하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2010년대에는 알카에다(Al-Qaeda) 등 이슬람원리주의 무장 테러단체와 연계된 납치, 테러 사건이 발생하며 제2의 소말리아로 불리기도 하였다. 

 

해적들이 이 지역에서 수세기 동안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 이유는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도서지역은 행정력이 미치기 어렵고 해안선의 작은 만이나 수로를 이용하여 국경의 통제를 받지 않고 무기, 현금, 인력을 쉽게 이동시킬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해적 퇴치를 위한 공동 대응이 장기간 부재했기 때문이다. 영토분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웃국가와 정보와 전술을 교환해야 하는 군사협력은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쉽사리 추진하기 어렵다. 특히 술루-술라웨시 해역은 오랜 기간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간 사바 지역을 둘러싼 영토 분쟁,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간 암발랏 지역을 둘러싼 갈등을 겪어온 지역이기 때문에 국가간 협력을 추진하기 어려운 조건을 갖추었다.

 

하지만 최근 동남아시아에서 해적은 눈에 띄게 감소하며 뉴스에서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로 관련국, 해양 동남아 국가들이 참여한 해적 소탕 작전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말라카 해협에서의 해적 억제와 안보 증진을 목표로 2004년부터 싱가포르와 함께 말라카 해협 공동 순찰을 시작했고, 2005년부터는 태국까지 항공기를 통한 공중 순찰활동에 참여했다. 그 이후 말라카 해협에서의 해적행위는 급격히 감소하였다. 말라카 해협에서의 경험으로 2016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은 술루-술라웨시 해역에서의 공동 순찰, 위기센터 설립, 핫라인 설치 등에 합의하고, 2017년 해적과 이슬람 무장단체의 납치 및 인질극에 대응하기 위한 합동 해군 작전 및 공동 해양 순찰을 실시한 결과, 이 지역의 해적 활동 역시 빠르게 감소하였다. 

 

이들 해양 동남아 국가들은 자신들이 속한 지역 협의체인 아세안이나 역내 유일의 다자 안보 협의체인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을 활용하기 보다는 해적 문제에 직접 연관된 국가로 협력의 범위를 한정하여 소다자 군사협력을 실시함으로써 신속하고 유연하게 해적 소탕을 이루어냈다. 이후 이웃 해양 국가들도 옵저버로 참여하거나 추가 참여국에 포함시키는 상향식 접근을 실시하여 협력의 플랫폼을 확장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회원국 간 갈등의 원인이였던 영토분쟁과 주권 민감성을 서서히 극복하며 상호신뢰를 구축하고 합동 군사작전에 대한 경험의 폭을 확장해 나갔다.

 

사실 2000년대 이전 동남아 국가들은 아세안 차원의 집단적 안보협력 뿐 아니라 관련 회원국 간 다자협력도 기피하는 입장이였다. 하지만 해적 행위라는 초국가적 범죄 대응을 위해서는 안보 분야에 대한 다자적 접근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광활한 해역을 공유한 해양 동남아 국가들은 협조된 지휘체계를 구축하여 정보를 통합하고 해상 및 항공 전력을 상호 배치하여 군사력을 운용함으로써 동남아시아 안보협력의 방식을 확대해 나갔다. 

 

소다자 협력은 지역적 차원 뿐 아니라 개별국가의 안보에도 도움이 되었다. 드넓은 해상에 상시 배치할 전력과 자금력이 부족하고 행정기반이 약한 국가로서는 국경을 공유하는 이웃 국가들과 함께 협력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용을 높이고 군사 역량도 증진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이처럼 효율적이고 포용적인 소다자협력은 아세안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며, ‘통합되고 평화롭고 안정적인 공동체’라는 아세안 비전 실현에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2024년 3월이면 BIMP-EAGA 설립 30주년을 맞는다. BIMP-EAGA도 역내 성공적인 소다자협력의 사례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한국을 포함한 협력국들의 관심과 지원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