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BIMP-EAGA 맞춤전략은 ‘그린 파트너쉽’으로 나아가야

등록일 2023.01.27

 

 

고영경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안센터 연구교수)

 

 

2022년 한국의 새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중심으로 외교전략을 구상하고 있고, 아세안 정책도 그 일환으로 포괄적인 전략적 파트너쉽으로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 아세안 정책 아래 한국과 소지역협력체와의 협력도 확대될 전망이다. 지리적으로 해양부와 대륙부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있는 아세안 내에서 지리적 인접성과 개발 현안을 공유하는 여러 소지역협력체 중 하나가 동아세안성장지대 BIMP-EAGA이다. 동남아 해양지역을 아우르는 BIMP-EAGA는 지정학적 측면과 생명 다양성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한국과의 협력은 제한적이었고 대표적인 사업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 BIMP-EAGA 협력이 크게 진전되지 못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먼저 한국의 BIMP-EAGA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지 않았으며 적극적인 협력관계 수립이 다소 최근 진행되었다는 시간상의 한계가 있다. 2009년 처음으로 BIMP-EAGA 인프라 개발 프로젝트가 출범했지만 한국은 2020년 11월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통해 한-해양동남아 협력 구상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BIMP-EAGA 협력기금은 2021년에 신설되었는데 기금 규모도 2021년 100만 달러, 2022년 300만 달러 규모로 증액되었지만, 아직은 메콩협력기금보다 적은 규모이다. 장기적인 사업이나 대규모 프로젝트는 당장은 제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행히 2023년 한-아세안 협력기금 규모를 두 배 증가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으므로 BIMP-EAGA 기금 규모 역시 확대될 예정이다. 따라서 향후 BIMP-EAGA에서 중장기 사업 계획이 가능해지고 프로젝트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두번째, BIMP-EAGA의 의사결정구조와 실무담당 협의 과정이 복잡하다. 동남아 해양부의 소지역 협의체인 BIMP-EAGA는 1992년 필리핀의 라모스 대통령이 제안했으나 2003년이 되어서야 첫 번째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 이후 아시아개발은행의 지원으로 개발 로드맵(2006-2011)과 실행 청사진(2012-2016)이 채택된 이후에야 BIMP-EAGA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관련 당사국이 4개이고 각 국가의 해당 지역 지방정부까지 포함해 이해당사자가 많다 보니 BIMP-EAGA 지배구조는 복잡하고 진행 체계가 다층적이어서 협의, 실행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한국과의 실무적인 협의도 당연히 신속하게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과 BIMP-EAGA의 공동의 관심분야 “그린”에서 길을 찾아야

 

뒤늦게 출발했지만 한국이 BIMP-EAGA와의 협력사업을 효율적으로 진행시키려면 상호간의 공통 이해 구간을 찾아내고 여기에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BIMP-EAGA가 추구하는 목표는 ‘비젼 2025’에 명확하게 담겨있다. 그 목표는 인프라 구축과 산업 개발을 통한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여 궁극적으로 지역간 개발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EAGA 지역의 빈곤율이 국가 전체 평균보다 각각 14, 7.9 퍼센트포인트 더 높고 소득 수준이 더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개발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BIMP-EAGA가 협력을 가장 크게 기대했던 부분은 교통 인프라와 연계성 증대이다. 해양 도서지역은 지리적 여건 탓에 인프라 개발이 내륙지방보다 낙후되었고 이는 경제개발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또한 해양지역은 기후 위기에 취약하기 때문에 인간다운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이 절박한 실정이다. 그러나 한국이 BIMP-EAGA와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에 집중된다면 효율적인 사업 추진이 어렵다. 한국의 ODA 지원금 규모로는 일시에 다수의 대형 프로젝트를 감당하기 어렵고 민간자본은 수익성이 낮아 참여가 힘들다. 더군다나 해양 도서지역의 인프라 건설은 더 많은 자본과 기술 투입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리스크는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건설 인프라를 떠나 산업 부분을 살펴보자. 천연자원과 농수산물의 수출 그리고 관광업이 BIMP-EAGA의 성장을 견인해왔다. 농수산업과 제조업의 발전과 동시에 환경생태 보호를 위한 지원도 중요하다. BIMP-EAGA 지역은 전 세계의 60%에 해당하는 열대 해안선과 산호대가 형성되어 있는 해양생태계의 보고이자 세계적 규모의 열대우림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 자원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그린이나 순환경제로의 전환이라는 맥락 속에서 BIMP-EAGA는 인프라와 산업개발 협력을 중점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그린 경제, 순환경제로의 전환은 BIMP-EAGA와 한국 모두에게 우선적 과제이며, 지속가능한 경제발전과 생태환경 보호라는 내부 요인과 글로벌 시장의 환경규제 강화라는 외부요인이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브루나이는 2050년까지 넷제로 달성을 선언하였으며 말레이시아는 2050년 이후, 인도네시아는 2060년까지 넷제로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필리핀은 넷제로 시한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아세안 경제공동체 차원에서도 2021년 순환경제 프레임워크(Framework for Circular Economy for the AEC)를 채택하였고 아세안 택소노미가 2021년 공개되었다. 한국은 2050 넷제로 목표를 설정했으며 이를 위해 새정부는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을 기치로 내세웠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BIMP-EAGA 4개 국가와 한국 모두 그린 경제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배출권 확보도 시급한 과제이다.

 

한국과 BIMP-EAGA가 그린경제나 순환경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상호협력과 기술 공유가 필요하다. 그린경제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으로 에너지 효율화나 친환경 교통수단, 그린 빌딩, 폐기물 처리, 스마트 농수산업 등 여러 분야를 포괄한다. 그렇지만 그린경제 전환은 단순히 켐페인이나 지원책으로 개발되는 것이 아니며 그린테크나 클린테크 그리고 디지털이 결합된 기술이 적용될 때 달성 가능하다. 예를 들어 해양폐기물처리는 인공지능 솔루션이, 양식장과 농장은 센서와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팜 기술이 생산성을 높이면서 환경을 지키는데 일조할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인 코발트와 흑연, 희토류의 채굴 및 제련과정에서는 환경오염이 발생하며 폐배터리 처리도 쉽지 않다. 생산과정에서 오염을 발생시키지 않고 이차전지를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자동화 설비 구축을 위한 투자와 함께 상당한 친환경 기술개발이 요구된다. 그린테크 분야의 기술은 BIMP-EAGA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요소이고, 한국기업들이 보유한 강점이다. 만일 한국정부의 지원 하에 한국의 테크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들이 BIMP-EAGA 그린 협력 사업에 참여한다면 해당 지역의 현지 파트너와 지역사회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술적 솔루션을 제공받을 수 있고, 참여한 한국기업들은 협력사업을 통해 더 풍부한 데이터를 확보와 해외시장 진출 경험을 갖게 된다. 중견기업과 대기업들이 참여한다면 현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면서 글로벌 ESG 평가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게 될 것이다. 특히 탄소배출권 확보에 비상이 걸린 한국기업들에게 BIMP-EAGA과의 협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BIMP-EAGA 지역은 탄소감축비용은 낮고 조림배출권 생산 여건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대외정책에서 상대국에 대한 맞춤전략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맞춤전략이 성과를 거두려면 우리의 강점과 상대방의 필요가 일치해야 한다. 한국과 BIMP-EAGA의 공통된 우선순위 분야는 대형인프라가 아니라 그린섹터이다. 적은 기금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기후대응에 공조 명분과 현지 문제해결에 기여하는 실질적 성과를 거두면서, 한국기업들에게도 중요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을 지원하는 ‘한-BIMP-EAGA 그린 파트너쉽’이라면 맞춤전략으로 적절하지 않을까.